
행사가 있는 날이면 신기하게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집니다. 20년이 넘도록 현장을 다녔지만 여전히 설렙니다. 아직도 일이 좋고,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전달하는 이 순간들이 좋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일이지만 저에게는 언제나 흥분되고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오랜 시간 현장을 경험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음향이라는 분야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라기보다는 누구나 대충 할 수 있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그런 분야로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부 양심 없는 업체들에게 터무니없는 금액을 지불하거나, 불필요한 장비를 과도하게 설치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습니다.
수일미디어를 시작할 때 단 하나만 결심했습니다. 고객에게 절대 과하게 제안하지 말자. 꼭 필요한 것만 설치하고, 적정한 금액만 받자. 그게 제 원칙이었습니다. 오늘도 그런 다짐을 하며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GS25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여는 것이 저의 루틴입니다. 스타벅스와 함께 제가 가장 애정하는 커피죠.
11월의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갑습니다. 여전히 반팔 차림인 저야 괜찮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쌀쌀한 날씨일 겁니다. 오늘 향할 곳은 경기도 의왕에 위치한 에스타시온입니다. 야외 웨딩 음향렌탈 요청을 받았습니다. 의왕은 지난번 안양 근처 행사 이후 두 번째 방문입니다. 특별히 아는 분도 없고 연고도 없는 지역이지만, 김포에서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일찍 출발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무료도로로 경로를 설정했습니다. 고속도로 통행료도 만만치 않거든요. 현재 네이버 쇼핑을 통해 음향패키지를 판매하고 있지만, 각종 수수료와 세금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금액은 정말 미미합니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인지도가 낮은 소규모 업체니까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달려갑니다.
음향렌탈 요청은 대부분 야외 행사나 야외 웨딩에서 들어옵니다. 실내 공간은 이미 음향 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야외라 하더라도 잘 알려진 장소나 준비가 철저한 곳들은 자체적으로 완벽한 음향 장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게 연락이 오는 곳들은 주로 상당히 외진 장소들입니다. '여기에 무슨 시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깊은 산속이거나 도심에서 한참 벗어난 곳들입니다. 그런데 고객들 역시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현장에 도착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곤 합니다.

오늘도 가장 먼저 도착했는데, 현장을 확인하고는 살짝 당황했습니다. 계단이 있었습니다. 계단은 장비 운반에 있어 가장 까다로운 장애물입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층간 이동과 마찬가지로, 무거운 장비를 여러 번 들어 나르는 고된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은 이런 디테일한 어려움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일만큼은 제 아이들에게 절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훗날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첨단 웨어러블 장비가 개발되어 무거운 짐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네요.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데코레이션 업체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습니다. 에스타시온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블로그 검색 결과 이곳에서 많은 분들이 웨딩을 진행하셨더군요. 자연광이 잘 들어와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구조였습니다. 오늘도 좋은 날씨가 이어지길 바랐습니다.


한 시간가량 주변을 살피다가 본격적으로 장비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스피커, 케이블, 믹서, 마이크, 스탠드 등을 메인 위치로 하나하나 운반했습니다. 다행히 충분한 시간이 있어서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현장 담당자분이 도착하셨고, 특별한 추가 요구사항 없이 잘 부탁한다는 인사만 건네셨습니다. 항상 그렇듯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드렸습니다.
약 1시간에 걸쳐 세팅을 완료하고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주변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분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러 오시다니. 어쩌면 저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신 것 같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 서로 의지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모든 과정을 혼자 합니다. 준비부터 설치, 운영, 철수까지 전부 혼자입니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지만, 때로는 외롭고 힘겹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렇다고 직원을 고용하기에는 수익 구조가 맞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예식이 시작되고 한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신랑 신부분이 상당히 연세가 있으셨습니다. 사회자의 멘트를 들으니 환갑을 넘기셨다고 합니다. 축가는 작은 아드님께서 직접 준비하셨는데, 일렉기타와 이펙터까지 챙겨오셔서 이적의 '다행이다'를 연주해드렸습니다. 음향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했지만, 노래 연습은 조금 더 하셨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습니다.
예식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마무리됐습니다. 제가 경험한 예식 중 가장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의 상황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그리 따뜻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식사를 진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식은 끝났지만 하객분들의 식사 시간 동안 배경음악을 계속 틀어달라는 요청이 있어 대기하게 되었습니다.




승낙 후, 근처 왕송호수공원으로 잠깐 산책을 나갔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잘 조성된 공원이었고, 가족 단위, 연인들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집에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아내, 강아지 생각이 났습니다. 함께 이런 곳에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호수가 상당히 크고 주변 시설도 잘 되어 있었습니다. 이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주말마다 이곳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러움이 들었습니다.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 장비를 정리해도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서둘러 현장으로 돌아가 철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설치할 때는 여유롭게 콧노래까지 부르며 하는데 철수는 완전히 다릅니다. 시간도 촉박하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사라집니다. 철수는 어떤 현장이든 30분 내로 끝내야 합니다. 숨 가쁘고 힘들지만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번에도 급하게 정리를 마치고 장비를 차에 실었습니다.
귀가길 차 안에서는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집에 치킨이나 사 갈까? 집에 가면 힘든 내색하지 말아야지.
아이들에게는 오늘 정말 즐겁게 일했다고 말해야겠다.
"아빠가 오늘 엄청 큰 호수 구경하고 왔어. 우리도 다음에 가족들이랑 놀러 가자."
가족이 있기에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매일같이 그렇습니다.
만약 제가 혼자였다면 벌써 지쳐 쓰러졌을 것이고, 모든 걸 포기하고 무책임하게 살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가족이 있기에 오늘도, 내일도 다시 현장으로 나갈 힘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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